4. 바톤 핑크 Barton Fink  (1991) : 파라솔은 거기 없었다.

본문에서 말하지 않을 것부터 말하는 모순을 먼저 범하자. 코엔 형제가 자신의 세계 안에 미국(영화)사에 대해 행한

발언의 궤적을 따라 본편을 1940년대초 제2차 제국주의 전쟁 중 예술이 점했을 비루한 위치, 즉 캐피털(자본) 영화사와

결말부 예비역 대령이 된 제작자 등의 저급한 기호들을 소시민의 생활로서의 미학을 구축하려한 주인공 바톤 핑크와

대립/결합시키면서 자기 혐오화했다는 평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글에서 그 논점은 가능한 배제한다.

시대와 권력 앞에 허위로서의 예술적 주체를 각성하는 바는 윤리의 매혹이지만, 본문은 그저 도플갱어 놀이에 집중하련다.

주인공의 이름을 표제로 하는 영화의 숙명이란 즉각적으로 '그는 누구인가?'로 연결된다. 이를 위해 그의 등장과 여정

그리고 종착지를 동행 취재하는 것은 도식적이며 그 과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당연하게도 분신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미 코엔 형제는 전작 두 편에서 주인공 남성이 무차별 구타당하는 상해감과 부친 살해의 직선성을 통해 회복/이탈의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지만, 본편은 그같은 맥락보다는 데뷔작 <블러드 심플>에서부터 제출될 수 밖에 없는 과연 카메라

뒤 자리의 전지성에 대해 응답하려는 예의를 갖추면서 전작들과는 다른 다소 반성적인 무기력으로 태세를 전환한다.

물론, 본편에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캐피털 영화사의 제작자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 소설가이다. 둘 중

전자는 아들 인정을 취소 방출하고, 후자는 전작처럼 아들에 의해 심정적으로든 실재적으로든 살해되었다고 해야겠다.

이 지점을 현재적인 패배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는데, 왜냐하면 본편은 예술의 불구성에 대한 전형적인 냉소담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바톤 핑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대답한 바와 같다. 그는 아직 예술 바깥으로 나가보지 못한 예술이다.

뉴욕에서 할리우드로의 이동은 현실/리얼의 좌표에서 데뷔 이후 지속한 범죄물을 경유해 도착하는 영화/환타지로의 착지다.

만일 바톤 핑크가 미성숙의 예술이라 상정한다해도 본편이 그가 왜 '미완'인가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보다 본편은 그의 현상적 실체로서의 불안을 중계하는 여정의 미학에 좀 더 집중하려는 듯이 보인다.

당연하게도 오프닝의 첫 대사와 첫 이미지는 이에 부합하는 첫 사례가 된다.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한다"에 붙는 프레임은

연극 무대장치가 내려지는 하강 이미지다. 이른바, 작별로서의 하강. 그리고 이제 도달해야할 성찰은 대사처럼 "대낮도 꿈"이다.

첫 프레임의 인물이 작가로서의 주인공이나 배우, 연출자가 아니라, 무대 뒤 장치들을 움직이는 노동자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 노동자의 좌표에 주인공 작가인 바톤 핑크는 영원히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일화될 필요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노동자 남성이 바통 핑크 앞에 서서 "생선이오! 싱싱한 생선'을 외칠 때의 비릿함의 복선을 거부할 수 없다.

이어지는 연극 무대의 커튼 콜에서 배우 중 남성 1인이 '작가'를 환호하는 관객을 대리하여 무대 뒤 바톤 핑크를 불러들일 때

그의 손에 들려있는 병에는 왠지 우유의 비린내가 가득할것만 같다. 무엇보다 정작 무대 앞으로 나선 바톤 핑크는 배우들 사이로

끼어들어가 관객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쩡쩡하게 무대 뒤와 무대 중앙 사이에서 서 있기만 한다. 그는 조명이 허락되지 않는다.

뉴욕 연극판의 지적 허영을 살짝 건너뛴 다음 단락인 할리우드로의 진출 대화를 움켜지는 것은 바톤 핑크와 권유자 사이에

보이는 황금빛 현금 출납기이다.  바톤 핑크가 내내 강변하는 '진정한 성공'의 정좌이자 동시에 반대편일 수 있는 모순의 물성.

금빛 돈통은 곧 파도가 부딪히는 해변가 바위로 전환된다. 두 물체를 동의이음어로 읽어도 좋다면 할리우드의 낡은 호텔로

들어서는 바톤 핑크의 겹쳐지는 화면에서 그가 서있는 곳은 이미지 그대로 해변가 파도 위다. 이제 생선과 물병과 파도가

하나로 꿰이고 그 위에 바톤 핑크를 놓아도 좋다. 그 곳은 유령의 집이니 호텔 종업원(스티브 부세미 역)은 지하로부터 등장한다.

여기서 관객은 호흡을 가다듬고 질문을 던져야한다. 바톤 핑크는 왜 할리우드로 왔는가? 그것은 충분히 객석을 납득시켰는가?

자본의 영광을 제외한다면 남겨진 것은 보통 사람을 위한 예술로서의 진정한 성공일텐데, 그 기반이 할리우드의 영화에

함유되어있는지 생략한 채로 느닷없이 바톤 핑크는 이동했다. 이같은 '일단 저지름'의 행태는 기존 3편의 주인공들에게서도

충분히 추출될만큼 반복적인 선택이다. 독자가 이 행위의 사유를 통찰하는 것은 영화가 거의 종결에 다다른 이후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일단' 관객은 바톤 핑크가 진정한 성공을 이상한 나라로 왔다고 전제할 때 시작인 호텔의 첫 횐대는 소음의 지속이다.

호텔 이름인 'EARLE'에서 마지막 철자 하나를 바꿔 'EARLY ' 로 읽고싶어지는 독해의 호기심은 아직 '이르다'. 아직 바톤 핑크는

무수한 호텔의 소음들을 너무 많이 들리기 전이고, 줄줄 흘러내리는 접착제로 인해 떨어지는 벽지를 압정으로 붙이기 전이며,

무엇보다 책상 위에 놓을 휴대용 타자기 위의 액자 속 싸구려 그림을 보기 전이다. 전술했듯 호텔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바톤 핑크의 분열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 순간이동한 유령의 집에서 은폐했었는지조차 스스로 모를

무의식의 소음들을 발생시켜 자신을 확인하고, 찢어내고 싶었던 벽의 거죽을 끌어내리고, 자신의 쓴다라는 예술적 행위를

응시의 클로즈업이라고 할 액자 그림 보기 아래 위치시킨다. 그리고 액자는 그 스스로 본다라는 무목표의 불구성을 반증한다.

여기 본편의 모든 것이 있으니 주목하세요라고 강요하는듯한 프레임과 디제시스 밖 바닷가 효과음향에서 정말유의해할 것은

시선의 일치 여부다. 액자 속 여인이 바라보려는 것이 무엇인지 바톤 핑크는 알지 못한 채 그림을 응시한다. 프레임 속 프레임

전략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주인공이 정물화된 액자를 바라보는 것이 종결에 실제 이미지로 변형 복귀할 것임을 능히 인지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액자 속 그림과 실현된 풍경 사이에 과연 어떤 간극이 있는지를 간파하기 위해 일종의 기억력 시험에 들어간다.

물론 그 액자/현실의 전환을 위한 시간을 인내하기 위하여 이제 분신들과의 만남이라는 상황극으로 들어갈 준비도 필요하다.

사장 잭과 호텔 옆방 찰리(존 굿맨 역)이 모두 거대한 몸집의 사내라는 동일인물성은 엄청난 압박감으로 바톤 핑크의 분신에

대한 죄의식을 반영한다. 실제로 찰리는 레슬링 경력으로 바톤 핑크를 스파링하기도 하고, 제작자 잭이 원하는 시나리오 역시

B급 레슬링 장르물이다. 바톤 핑크가 영감을 얻기 위해 보는 흑백 레슬링 영화의 주 장면은 밑에 깔린 선수의 무력한 고통이다.

이는 액자 그림 아래 놓인 타자기, 오프닝의 하강 이미지와 호응하는 방식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최저 의식에 다름아니다.

바톤 핑크의 '진정한 성공'을 얻기 위한 분신술 외에 또다른 방식은 밑바닥에 바짝 밀착되어져야하는 육체의 통과 의례인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본편은 환타지 앞에서 항복선언하는 리얼리즘을 위한 가혹한 안내서인가? 적어도 영화의 표면은 그럼직하다.

하지만, 본편의 의표는 여전히 <블러드 심플>의 오프닝 나레이션과 동배로서 불가지론을 지향한다. 가령, 영화에서 타자기를

두들기는 클로즈업된 다른 손은 감독의 늙은 여자 비서의 그것이고, 바톤 핑크가 작성한 시나리오의 첫 몇줄은 어느 호텔에나

비치되어 있는 성경 창세기 첫 구절과 동일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톤 핑크의 대본 첫 문단은 그만큼 관습적이다.)

친절하게도 성경의 다른 구정을 인용하면서 본편이 꿈이며 동시에 해몽이어야함을 적시하지만, 해몽은 프레임 밖 관객에게 있다.

'마음의 평화'라는 보험을 판다는 찰리는 '진정한 성공'의 바톤 핑크의 가장 강렬한 금지된 분신의 귀환이지만, 그를 가장

명확하게 지정하는 것은 귓병과 듣기이다. 그는 듣는 것은 인내하지 못하는 바톤 핑크를 질책하는 귓병 고름의 질환자이며

최종적으로 바톤 핑크가 옆방 잉꼬 커플의 성관계 소음을 통해 은유했던 섹스에 대한 욕망의 실현과 동시에 그것의 부정의

결과물인 여성 살인의 뒷처리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찰리의 실체인 정신병자 연쇄살인마를 바톤 핑크에게

고지하는 형사 두 명이 거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커플처럼 속사포 대사를 이어가는 것은 듣기 방해의 실체에 대한 낙인이다.

형사를 살해할 때 찰리가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총을 꺼내들 때 그 가방은 흡사 휴대용 타자기의 그것과도 유사해보인다.

여성 오드리(쥬디 데이비스 역)가 살해되어야하는 이유는 성관계 외에도 명백하게 그녀가 사실상 사실 너머의 실체였기

때문인데, 그녀는 유명 소살가 메이휴의 작품을 대필한 인물이기에 바톤 핑크는 그같은 허위성이 자신에게도 전염되기 전에

부지불식간에 오드리를 차단해야만한다. 애석하게도 오드리는 액자 속 그림의 해변의 여인이 될 수 없는 그림자 주체다.

그녀가 살해되는 장면이 삽입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역시 이같은 맥락인데, 그녀는 영원히 실체로서 인정되어서는 안되는 저주다.

기실 여기에 추가되어야하는 인물은 제작자 잭과 감독 벤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보통사람'의 경계 너머라 형사가 대리한다.

그들은 이른바 영원히 살아있는 (자본과 국가로서의) 아버지의 법과 같은 존재이기에 오히려 바톤 핑크는 그들에게 해고된다.

즉, 본편은 전작들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아버지의 품을 파괴하거나 이탈할 수 없는 아들로서의 불구성에 머무는 첫 사례다.

( 신문 기사로 보이는 소설가 메이휴의 죽음은 애석하게도 이미 죽어있었던 이의 처리라는 점에서 진정한 아버지가 아니다. )

오드리의 죽음 단락은 세면대 하수구라는 근접한 심연과 모기 죽이기라는 간단한 찰싹의 확장과 축소의 이분법의 매혹이다.

작가에게 머리를 빌려주었던 여인 오드리에게서 진정한 '머리'를 인지했던 허위성을 은폐하기 위한 살인이 종결된 이후

바톤 핑크가 옆방 찰리를 부르는 분신관계로서 당연하다. 관객 누구나 짐작하듯이 찰리가 맡겨둔 상자 안에는 오드리의

잘려나가야했던 머리가 들어있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머리가 바톤 핑크의 타자기 옆 그림 아래에 놓이면서 드디어

바톤 핑크의 시나리오가 작성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형사들로부터 찰리/바톤 핑크의 연쇄 살인마로서의 실체를

확인받은 이후다. 두 형사의 성이 독일식 발음이라는 점은 찰리의 '하이 히틀러'와 연결해 예술의 파시즘화에 대한 경계가 된다.

바톤 핑크가 비로소 어떤 위대한 작품을 탈고했든간에 중요한 것은 그의 파편적인 문장의 음성 전달이 아닌 개봉 여부다.

그것은 군인이 된 제작가로부터 거부당하는데, 이는 '하이 히틀러'의 또다른 면모인 제국주의로부터의 부인이다. 물론

단순히 폐기하는 당사자의 정체성을 통해 작품의 위대성을 가늠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착오다. 차라리 이는 전술한

코엔 형제의 불가지론의 편리한 연재물로서의 인장으로 처리되는 편이 의외로 무난하다. 왜냐하면 지금 관객은 그

결과물 바깥에서 그 여정을 지켜본 또다른 결과물로서의 영화를 프랑스 칸의 세자리 선택을 경유하여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휴의 머리와 오드리의 머리가 합쳐졌을 상자의 마력으로 인해 작성된 시나리오는 결국 빌린 머리의 또다른 복사품일지

아니면 잘려나간 머리의 상쾌한 단절감의 예술적 보복작일지 판별하는 작업은 관객의 몫이다. 다만 복도 밖 꺼내놓은 구두와

옆방 찰리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호텔의 긴 복도 객실이 불에 탄 이후에 터벅터벅 나올 수 있는 환타지를  신뢰하라는

권유는 그다지 하고싶지 않다. 무엇보다 탈고 이후 바톤 핑크가 참전하는 해군의 무도회장에서 미친 듯 춤을 추다가 함방

얻어맞고 다시 바닥에 바싹 엎어지는 상황이 재발된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관객은 상자만큼이나 그 탈고를 열지 않아야 한다.

종점에서 이제 본편의 표본인 액자 속 그림으로 돌아와야한다. 두 그림 사이에서 간과하지 말아햐할 또하나의 클로즈업은

찰리의 사진이 액자 우측 아래에 끼어있는 프레임이다. 드디어 해변의 여인을 만난 여인은 찰리의 귓병을 이어받은 듯

여인의 말을 제대로 한번에 듣지 못하고, '영화배우'냐고 물었다가 핀잔만 듣는다. 이 핀잔의 맥락은 해변의 여인이 결코

예술 따위에 관심이 없음을 뜻한다. 이를 뒷받침한듯이 그녀의 곁에는 액자 그림 속 파라솔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으로서

그녀의 머리를 그림 속 흑발이 아니라 금발이며 수영복 역시 옐로우 페이퍼가 아니라 바톤 '핑크'의 분홍임이 드러난다.

자연광을 차단했던 파라솔의 부재로 인하여 한순간 그림과 실재의 차이를 확인하게 된 바톤 핑크는 '아름다움'을 고백하지만,

그것이 곧 예술로서의 영화여야할 이유가 없음 앞에서는 침묵하게된다. 애당초 '진정한 성공'으로서의 미학은 거기 없었다.

이제 바톤 핑크가 앉은 자리는 두번째 액자 그림 프레임에서 찰리의 사진이 끼어든 위치와 대동소이하다. 바톤 핑크는 드디어

해변의 여인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그녀가 자연광을 손으로 가리고 응시하는 저 너머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잔혹한

엔딩 프레임은 그 곳을 응시하기를 거부하고 오프닝의 '신선한 생선'을 잡으려는 갈매기의 '하강 이미지'를 더 신뢰한다.

독자로서 이에 동의하는 가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응시하려는 실체와 행위 가능성에 달려있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바톤 핑크>는  관객들을 불가지론과 비스듬한 오이디푸스의 경로 속에 버려둔 감독이 고백하는 창조의 불구성이며

허위의 머리들이 잘려나간 이후에야 비로소 작성 가능한 예술을 폐기당한 이후 저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자격취득 과정이다.